2025년 지방 소멸 대응 : 브랜드 대학 모델이 지방에 주는 시사점
지방대학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화는 이미 수년 전부터 한국 대학 생태계를 흔들어왔고, 특히 지방대학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브랜드 대학 모델’**이다. 이는 단순히 학교의 로고나 이름을 바꾸는 ‘브랜딩’이 아닌, 대학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전략적으로 설계하고 지역과 연결하여 시너지를 내는 교육 시스템을 의미한다.
지방대학의 현실과 위기
2025년 현재, 전국 380여 개 대학 중 약 70%가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재정난으로 폐교 위기에 몰린 곳도 적지 않다.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 수도권 대학으로의 쏠림 현상은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대학 경쟁력을 넘어, 지방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부분 수도권으로 진학하거나 취업을 위해 이주한다. 이로 인해 지방의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고, 지역 경제는 침체된다. 다시 말해,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 유지와 회복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브랜드 대학 모델이란?
‘브랜드 대학 모델’은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다. 대학이 자체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 해당 지역의 특성과 연계하여 차별화된 교육 콘텐츠와 산학협력 모델을 개발한다. 대표적으로 강원대학교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강원대는 춘천, 강릉, 원주, 삼척 등 강원도 내 주요 거점에 캠퍼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 캠퍼스는 지역별 특성화에 맞춘 학과 및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하나의 강원대라는 브랜드 안에서 다양한 지역 전략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델은 단순한 다캠퍼스 운영이 아니라 지역 중심 글로컬 전략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지역에 주는 긍정적 영향
브랜드 대학이 지역에 주는 시사점은 단순하지 않다. 이는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복합적인 긍정 효과를 낳는다.
1. 지역경제 활성화
브랜드 대학은 해당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와 소비를 유발한다. 대학 내 산학협력단,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지역 기업과의 프로젝트는 지역 내 경제 순환 구조를 촉진시킨다. 특히 ‘대학 도시’가 되는 지역은 관련 산업이 집약되며, 청년 인구가 유입됨에 따라 도시의 활력이 되살아난다.
2. 교육의 질 및 입시 경쟁력 강화
특정 분야에 강점을 가진 대학은 해당 전공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예를 들어, 해양 관련 학문에 특화된 목포해양대, AI와 로봇산업 중심의 특성화를 추진 중인 일부 국립대 사례처럼, 브랜드화된 전공 중심 전략은 전국 단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3. 지역 정체성과 자긍심 고양
지역의 대표 대학이 명확한 브랜드 전략을 가지면, 주민과 학생은 자긍심을 갖는다. 이는 곧 지역 정체성의 재정립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지역과 대학이 상호 지지하는 구조로 발전한다.
정책적 시사점과 과제
이러한 브랜드 대학 모델이 성공하려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단순히 재정지원을 늘리는 것을 넘어서, 대학과 지역이 함께 전략을 수립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 통합과 구조조정
현재 교육부가 추진 중인 ‘글로컬대학30’ 사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기획되었다. 지방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대학 간 통합, 지역 연계, 산업 협력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며, 대학 브랜드와 경쟁력을 동시에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통합 과정에서 생기는 교수진 갈등, 행정 비효율, 학생 혼란 등의 문제도 적지 않다.
브랜드 강화를 위한 지원 정책 필요
브랜드 대학이 정착하려면 단순한 통폐합이 아닌, 지역 맞춤형 브랜드 전략 수립과 실행이 중요하다. 이는 단일화된 평가 기준보다는, 대학이 가진 잠재력과 지역 수요에 맞는 다양한 성과 지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브랜드 대학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략
브랜드 대학 모델이 일회성 정책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대학 내부와 지역사회, 중앙정부 간의 긴밀한 협력과 유기적인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지역대학은 그 지역의 산업 구조, 인구 구성, 문화 자산 등과의 연계를 기반으로 지역 특화형 인재를 육성하고, 이를 다시 지역에 정착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충남권에서는 농업과 바이오, 대덕연구단지 등을 연계한 산·학·연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으며, 전북 지역은 친환경 농식품과 재생에너지 특성화를 통해 대학이 산업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단순히 교육의 문제를 넘어서 지역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주는 시사점
브랜드 대학 모델은 입시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수도권 대학만을 고집하는 기존 입시 문화에서 벗어나, 자신의 전공 적성과 관심 분야에 따라 ‘지역 특화 브랜드 대학’을 선택하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 이는 수험생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동시에 지방대학에 우수한 인재 유입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AI 특성화가 잘 된 지역대학에 지원하면, 수도권보다 실무 중심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오히려 빠른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또 지방대학의 등록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 경제적 측면에서도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브랜드 대학 모델이 제시하는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우리가 브랜드 대학 모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대학 간 경쟁력 제고 차원이 아니다. 이 모델은 교육의 본질, 지역의 미래,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다층적 문제를 동시에 풀어낼 수 있는 구조적 해법이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일률적인 학문 중심 교육이 아닌, 지역의 필요에 맞는 문제 해결형 교육, 창의성과 실무를 중시하는 융합형 교육, 산업과 연계한 현장 중심 교육이 바로 브랜드 대학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이는 단순히 ‘좋은 대학’을 넘어 ‘필요한 대학’, ‘살아있는 대학’의 모습으로 진화하게 만든다.
해외 사례와의 비교: 퍼듀대학교 사례
미국의 퍼듀대학교(Purdue University)는 지역 산업과 밀착된 공학 및 농업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유명하다. 인디애나 주에 위치한 퍼듀대는 GE, IBM, NASA 등과 협력하며 공학, 우주항공,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브랜드를 구축해 왔다. 이는 단순히 학문적 권위가 아니라, 산업 연계와 실용성을 중심으로 한 브랜드 전략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모델은 우리나라 지방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도 닮아 있다. 즉, 세계와 소통하면서도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글로컬(Global + Local) 전략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마무리: 지방대학 생존의 해법은 ‘브랜드화’
결론적으로, 지방대학이 생존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재정 지원이나 입학 정원 조정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학의 정체성 확립과 브랜드화에 있다.
브랜드 대학 모델은 교육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대학이 지역과 국가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지표가 된다. 이제 지방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지역 생태계의 중심축으로서 스스로를 브랜딩 하고, 혁신하고, 성장해야 한다.
정부와 지역사회는 이 변화에 발맞추어 실질적인 지원과 유연한 제도 운영을 병행해야 하며, 학생과 학부모도 이러한 흐름을 이해하고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